2화. 봄볕 아래 칼날

WX
편집부
사부의 배신으로 멸문당한 백호문 막내 공자가 13년 전으로 회귀해 복수의 검을 갈무리한다  · 

눈이 떠졌다.

천장이 보였다. 낡은 들보에 거미줄이 한 가닥 흔들리고 있었다. 봄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비스듬히 들어와 방 안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그 빛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순간 숨이 막혔다.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천악의 얼굴이었다. 자상하게 미소 짓는 그 얼굴. 가슴을 꿰뚫은 검이 서서히 뽑혀 나오는 소리. 그리고 피가 고이는 흙바닥.

여기는 내 방이다.

나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눈앞에 펼쳤다. 손바닥이 작았다. 전생의 나는 굳은살이 박이고 칼날에 몇 번이고 베인 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손은 아직 부드러웠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없었고, 단련으로 굵어진 마디도 없었다. 그저 열세 살짜리 아이의 손이었다.

어젯밤까지 분명히 있었던 칼날 자국이 사라져 있었다.

회귀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손바닥을 긁어 피를 냈었다. 그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고통을 느끼고 싶었던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상처는 없다. 회귀 전 몸의 기억은 이 육신에 남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릿속에만, 뼈 속 가장 깊은 곳에만 남아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호지를 걷어 내자 봄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백호산의 아침이었다. 산자락에 연초록이 돋아나고 있었고, 저 아래 마당에서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각임에도 사형들이 기초 수련을 하고 있었다. 마진 사형이 목검을 크게 휘두르며 구령을 붙이고 있었고, 그 곁에서 조경 사형이 형식적으로 따라 하다가 귀찮다는 듯 멈추는 모습도 보였다.

살아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가슴을 꽉 눌렀다. 마진 사형은 전생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동문 중 하나였다. 등에 세 자루의 칼이 박힌 채로 쓰러져 있었다. 끝까지 싸우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가 지금 저 마당에서 구령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잠시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들이켰다. 그리고 내쉬었다.

복수는 소란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전생에서 배웠다. 이 손이 단련되기도 전에 한천악 앞에 섰다가는 그저 또 한 번 죽을 뿐이었다. 14년. 그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고, 나는 그 14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문이 두드려졌다.

"소운아, 일어났느냐?"

마진 사형의 목소리였다. 나는 목구멍 안쪽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꾹 삼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사형. 깨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오늘 아침 일찍 너를 보자 하신다. 밥도 거르지 말고 빨리 오너라."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천악.

그 이름을 속으로 부르자 손이 저도 모르게 오그라들었다. 허벅지에 붙인 두 손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떨리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도, 부친의 시신 앞에서도 끝내 울지 않았다. 그 눈물들은 어디엔가 고여서 지금 이 손떨림으로 흘러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손을 폈다.

오늘은 사부의 얼굴을 본다. 미소를 짓는다. 인사를 드린다. 그것이 전부다.

아침 식사는 문도들이 함께 모이는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사형들과 소사매들이 각기 자리에 앉아 죽과 반찬을 나누는 광경은 전생에서 수백 번도 더 본 것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모든 것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진 사형이 큰 그릇에 죽을 가득 담아 내 앞에 밀어주는 손짓, 조경 사형이 반찬 좋은 것을 자기 쪽으로 슬쩍 당기는 손길, 어린 사매들이 낄낄거리며 수군대는 목소리. 모두 기억 속에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냥 일상이었고,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이었다.

"사부님은 어디 계십니까?"

내가 마진 사형에게 묻자, 그가 턱으로 본관 쪽을 가리켰다.

"서재에 계신다. 오늘 너한테 무언가 가르쳐 주실 모양이야. 사부님이 아침부터 너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셨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르게. 자연스럽게.

밥을 다 먹고 나서 나는 서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본관 복도를 지나는 동안, 발밑으로 봄 흙의 냄새가 올라왔다. 아직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잎에 발끝이 스치는 감촉이 차가웠다. 나는 그 차가움을 밟으며 서재 문 앞에 멈춰 섰다.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들어오너라."

문을 열었다.

서재는 책이 가득했다. 낡은 서가마다 죽간과 경전이 빽빽이 꽂혀 있었고, 가운데 넓은 탁자 위에는 붓과 벼루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탁자 위에 사선으로 드리워져,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배경처럼 만들고 있었다.

한천악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이 살짝 섞인 머리카락. 단정하게 여민 도복. 그리고 자상한 미소.

나는 그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 세상이 한 박자 멈추는 것을 느꼈다.

전생에서 그 미소를 얼마나 믿었던가. 열세 살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나는 저 미소를 진심이라 여겼다. 가혹한 수련 뒤에 건네는 따뜻한 위로도, 밤새 기침을 앓을 때 끓여준 생강차도, 시합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머리 위에 얹어주던 손도. 모두 연극이었다. 13년이라는 시간을 치밀하게 계산된 거짓으로 채운 자가 지금 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운아, 어서 오너라."

목소리는 따뜻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전생에서 수천 번 반복했던 동작이라 몸이 스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개가 내려가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탁자 다리와 사부의 신발 끝이었다. 깨끗하게 닦인 신발. 나는 그 신발이 전생에서 내 가슴을 꿰뚫었을 때 어디를 딛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했다. 백호문 마당의 피 고인 흙 위였다.

손이 떨렸다. 소매 안에 숨겨진 두 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떨렸다.

"앉거라."

나는 앉았다. 사부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그 자리가, 전생에서도 항상 내 자리였다.

"어제는 밤새 잠을 못 잔 것 같더구나. 얼굴빛이 창백하다."

"별 것 아닙니다, 사부님. 어젯밤 수련 생각을 좀 하다 늦었습니다."

"허허. 그 나이에 수련 걱정을 하다 밤을 새워? 네 부친이 알면 기뻐하겠구나."

나는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나 스스로 느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얼마나 공허한지도.

한천악이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옥함을 앞으로 밀었다.

"오늘 너에게 줄 것이 있다. 열어보거라."

옥함 안에는 얇게 접힌 황색 비단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펼쳤다. 촘촘한 붓글씨로 기록된 구결(口訣)이 가득했다. 풍운심법(風雲心法) 입문 단계의 심법 구결이었다.

"백호문 문도들이 주로 익히는 것은 백호심법이지만, 너에게는 풍운심법을 먼저 가르치려 한다. 왜 그런지 아느냐?"

나는 알았다. 전생에서도 사부는 같은 말을 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특별한 총애로 받아들였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다르게 보였다. 풍운심법의 기초는 진기의 흐름을 극도로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단전의 내공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외부에서 흡혈공을 시전하기 가장 용이한 형태로 내공이 정렬된다. 풍운심법은 그것을 위한 준비였다. 나를 그릇으로 빚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소운이가 특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한천악의 눈가가 잔잔하게 휘었다.

"그렇다. 너는 특출하다."

서재를 나올 때, 나는 황색 비단 구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오자 봄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나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구결은 익힐 것이다. 다만 전생에서 사부가 설계한 방식이 아니라, 내가 설계한 방식으로. 풍운심법 기초 구결은 백호심법과 접합했을 때 단전 정렬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생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죽기 사흘 전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처음부터 적용할 수 있었다.

사부는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여길 것이다. 좋다. 모르는 척이 제일 유리한 무기다.

나는 구결을 품 안에 넣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저 멀리 마진 사형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소운아! 오늘 오후에 나랑 목검 대련 할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화의 미끼는 이미 깔려 있었다. 마진 사형. 훗날의 운명을 나는 이미 안다. 그러나 그것을 바꾸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아직 힘이 없다. 힘이 없는 자가 움직이면 역(逆)이 되고, 역은 죽음이 된다.

나는 그것을 전생에서 배웠다.

마당 한가운데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저 하늘 아래 백호문이 있고, 사부가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삼백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삼백 명을 죽일 자가 지금 서재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검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사형의 구령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소사매들이 웃는 소리도 들렸다. 봄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는 봄이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분류

';w.innerHTML=h;w.dataset.o='1';return true;}"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 운명을 노래하다 — 연재 안내

《천도 집행》 7화. 일성에서 이성으로

《데스티노 칸타레》 8화. 사랑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