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 집행》 4화. 사부의 손
훈련장 마당은 이른 봄볕을 정직하게 받고 있었다.
담장 너머 매화나무가 절반쯤 꽃을 떨군 자리에, 진소운은 발을 멈췄다. 황토를 다져 만든 훈련장 바닥이 발바닥을 통해 단단하게 전해졌다. 돌아보면 서재가, 조금 더 돌아보면 아버지의 사랑채가 보이는 거리였다. 여기서 훈련장 입구까지는 스무 걸음. 그 스무 걸음을 진소운은 전생에도 셀 수 없이 걸었다.
그때는 그 거리가 이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구결을 되짚는 일은 이미 끝났다. 풍운심법 열아홉 번째 줄부터 스물세 번째 줄까지 숨겨진 단전 개방 설계—사부가 천마검의 그릇을 빚기 위해 심어놓은 길—를 완전히 파악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설계 위에 자신의 운기 경로를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백호심법의 굵은 뼈대를 그 밑에 흐르게 하고, 풍운심법은 겉에서 요동치게 해야 했다. 사부의 눈에는 구결을 충실히 따르는 제자로 보이게끔.
그 계획은 머릿속에서는 완벽했다. 문제는 몸이었다.
열세 살의 단전은 솔직했다. 전생의 기억이 아무리 정밀해도, 진기를 실제로 운용하면 살점이 먼저 반응했다. 어제 밤 홀로 운기조식을 시도했을 때, 진기는 둘째 관문에서 이미 버거워했다. 속도를 억지로 끌어올리면 주화입마의 위험이 생겼다. 그것은 절대 감수할 수 없는 실패였다.
죽으면 안 된다. 이번 생은 단 한 번이다.
진소운은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는 동안 황토 냄새가 코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디선가 새가 짧게 울었다. 이른 봄의 산서 하늘은 높고 얇았다.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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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기 조금 전, 마진 사형이 목검 두 자루를 들고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왔냐, 소운아."
"예, 사형."
마진은 목검 한 자루를 툭 던졌다. 가죽 손잡이가 손 안에 들어왔다. 무게가 느껴졌다. 전생과 같은 목검이었다. 쌀가마 두 개 겹쳐 든 것 같다는 말을 지금의 진소운이 했다가는 이상한 놈이 되었을 테니, 조용히 두 손으로 잡았다.
마진은 이십 하나였다. 등이 넓고 목이 굵었다. 백호문 제자들 중 내공의 절대량으로는 조경 이사형에 미치지 못했지만, 검의 실전감은 문중 1위였다. 진소운이 전생에 처음 실전을 배운 것도 이 사람에게서였다.
그것은 나중에, 한참 후에야 알게 된 감사였다. 전생에서는 너무 늦게 알았다.
"사부님께서 보고 오셨다. 풍운심법 구결, 잘 받았냐?"
"예."
"어렵지 않냐? 나 그거 처음 받았을 때 셋째 관문에서 피 토할 뻔했는데."
목소리가 한없이 가벼웠다. 마진 사형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거운 말도 가볍게 꺼냈고, 가벼운 말도 진심을 담아 건넸다. 그 점이 전생에도 좋았다.
"잘 익히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러면 됐고—시작할까?"
목검이 들렸다. 진소운은 자세를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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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섯 합은 일방적이었다.
마진의 목검이 흘러오면 진소운의 손목이 밀렸다. 힘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방식을 쓰면 조금 나았지만, 열세 살 몸의 무게중심은 어른의 압력을 흡수하기에 부족했다. 세 번 밀려서 두 번은 자세를 회복했고 한 번은 황토 위에 무릎을 짚었다.
"야야, 허리 빠지면 안 되지. 검이 손에서 노는 게 아니라 몸에서 놀아야 해."
진소운은 일어서며 바지에 묻은 황토를 털었다.
말이 옳았다. 전생에서도 이 말을 들었다. 그때는 흘려들었다. 이번에는 새겼다.
여섯 번째 합. 진소운은 발 위치를 미세하게 바꿨다. 오른 발이 왼 발보다 반 뼘 더 뒤로. 무게중심이 낮아졌다. 마진의 목검이 쇄골을 향해 흘러왔을 때, 진소운은 흘려내지 않았다. 받았다.
순간 단전에서 진기 한 줄기가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늘었다. 전생의 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가늘었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백호심법의 뿌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몸이 처음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목검이 튕겼다. 마진의 손목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
마진이 목검을 내렸다.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게 됐냐? 받아냈잖아."
"운이었습니다, 사형."
"아니, 운이면 자세가 저렇게 안 나온다. 풍운심법 진기가 팔에 실린 거 아니야?"
진소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기도 했고, 거짓이기도 했다. 그 가는 진기는 풍운심법이 아니라 백호심법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두 심법이 뒤섞인 상태에서는 밖에서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더 할까요?"
"그래, 하자. 오늘 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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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이 끝난 것은 해가 훈련장 서쪽 담을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진소운이 목검을 거치대에 걸고 손을 털었을 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고 일정했다. 너무 일정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발소리.
몸 안쪽이 먼저 반응했다.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전생에서 수백 번 들은 발소리였다.
한천악이 훈련장 입구에 서 있었다. 회색빛이 섞인 머리칼, 단정하게 여민 도복,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상한 미소. 사십칠의 나이가 얼굴에서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눈가에 주름이 조금 있을 뿐, 피부는 단단하고 고요했다.
"고생했구나, 소운아."
저 미소가 처음부터 가면이었다는 것을.
전생에서 진소운은 죽기 사흘 전까지도 몰랐다.
"사부님."
진소운이 허리를 숙였다. 목소리에 아무것도 담지 않았다.
한천악이 천천히 걸어왔다. 마진 사형이 목검 두 자루를 들고 옆으로 비켰다. 사부는 그 앞에 서더니, 진소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손이 닿는 순간, 전생의 감각이 역류했다.
처음에는 소리였다. 백호산 전체를 덮던 비명—삼백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던 그 밤의 소리—이 귓속을 밀어왔다. 그다음은 냄새였다. 피 냄새. 그리고 불 냄새. 마지막으로 감촉이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꿰뚫던 차가운 쇠의 감각.
한천악의 검이 들어왔을 때, 그것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웠다. 진소운은 그 차가움이 내장 안쪽까지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사부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지금과 똑같은 미소가 있었다.
지금, 그 손이 머리 위에 있었다.
손바닥이 머리카락을 눌렀다.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죽음의 차가움과 겹쳐지면서, 진소운의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려 했다. 위 안쪽에서부터 치미는 것이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전생의 기억이 지금의 몸과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감각이었다.
두 손이 떨렸다.
목검을 거치대에 걸어두고 내린 손이었다. 허벅지 옆에 늘어뜨린 채였다. 사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진소운은 그 손을 주먹 쥐었다. 손바닥 살이 손가락 끝에 짓눌렸다. 손톱이 없는 열세 살의 손이었다. 그래도 쥐었다. 더 세게 쥐었다. 손 안쪽에 통증이 번지기 시작했다.
저 손이 검을 들게 될 날이 있다. 그리고 그날, 이 따뜻한 손바닥이 어디서 왔는지를 강호의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삼백 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며. 진소운은 이 손의 무게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온도를, 이 압력을, 이 자상함의 감촉을. 그것들이 전부 가면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오늘 대련 잘 봤다."
한천악의 목소리는 낮고 온화했다. 머리 위의 손이 한 번 토닥였다. "여섯 번째 합, 네가 받아냈더구나. 진기를 팔에 실었어?"
"예, 사부님. 서툴지만."
"서투르지 않았다. 심법 구결을 받은 지 이틀이다. 충분히 잘했어."
손이 내려갔다.
진소운은 머리를 들었다. 사부의 눈이 자신의 눈과 마주쳤다. 저 눈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전생의 진소운은 끝내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늘의 진소운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현경의 고수는 눈빛 하나 흘리지 않는 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저 눈이 자신을 보는 방식이 '제자'와 '그릇' 사이 어딘가라는 것을. 키우되 손대지 않는, 익히되 쓰지 않는, 그 경계에 진소운을 세워두고 기다리는 것이 저 눈의 의도라는 것을.
괜찮다. 기다려라.
진소운도 기다릴 수 있었다. 열네 해를.
"풍운심법, 오늘 밤에도 운기조식 해보거라. 무리하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한천악이 돌아섰다. 도복 자락이 조용히 펄럭였다. 마진 사형이 그 뒤를 따라 몇 마디 말을 건네며 걸어갔다. 목소리는 곧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훈련장에는 진소운만 남았다.
저녁 햇빛이 황토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이 없었다. 매화 꽃잎 하나가 어디선가 날아와 황토 위에 떨어졌다. 흰 꽃잎이 붉은 바닥 위에서 작게 빛났다.
진소운은 천천히 주먹을 폈다.
손바닥 안쪽이 붉었다. 손톱 자국이 네 개, 반달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손톱이 짧아서 살이 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국은 선명했다.
이것이 오늘의 몫이었다.
사부의 손이 머리에 닿는 것을 견디는 일. 그 따뜻함을 체온으로 느끼면서도 얼굴 한쪽 근육도 움직이지 않는 일. 그리고 떨리는 두 손을 허벅지 옆에 감추어두는 일.
내일도, 내달도, 내년에도 해야 할 일이었다.
진소운은 손바닥을 오므렸다가 다시 폈다. 한 번 더. 손가락이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거치대 위의 목검이 석양을 받아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무 결이 빛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진소운은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훈련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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