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 집행》 5화. 빈 단전, 30년의 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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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 편집실
《천도 집행》  · 

훈련장을 나서며 손바닥을 펼쳤다.

손톱이 파고든 자국 네 개가 붉게 남아 있었다. 깊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지려면 하룻밤은 걸릴 것이었다. 진소운은 그 자국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손을 쥐어 도복 소매 안으로 숨겼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훈련장 담 너머로 저녁 밥 짓는 냄새가 넘어왔지만 발걸음은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늘 저녁에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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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조용했다.

열세 살짜리 아이가 머무는 방답게 이부자리가 한쪽에 가지런히 개어 있었고, 창가 아래 작은 문갑 위에는 구결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풍운심법(風雲心法). 사흘 전 받아 온 것이다. 진소운은 그것을 집어 들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쉬었다.

들숨이 단전까지 닿기 전에 이미 느껴졌다. 텅 빔. 비어 있다는 것을 느끼려면 무언가가 채워져 있었던 기억이 필요하다. 진소운에게는 그 기억이 있었다. 스물여섯까지 쌓아온 내공의 감각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의 비어 있음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가슴 한가운데, 단전이 있어야 할 자리. 그곳이 차가웠다.

진기가 없었다. 운기조식을 시작해도 움직일 것이 없었다. 마치 두레박을 내렸는데 우물이 말라 있는 것처럼, 손가락 끝이 가야 할 길을 찾아 헤매다 허공에서 멈추었다.

숨을 내쉬었다.

다시 들이쉬었다.

세 번째 호흡을 끝으로 경맥을 억지로 두드렸다. 손끝에 힘을 모아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흐름을 강제로 자극하는 방법. 전생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익혔던 내공 운용법의 기초였다. 아직 단전이 자리를 잡지 못한 열세 살짜리 아이의 몸에 그것을 억지로 밀어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했다.

경맥을 타고 미세한 떨림이 올라왔다. 진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실낱같은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였다. 손끝에서 팔 안쪽을 따라 어깨까지, 거기서 다시 가슴 한가운데로. 진소운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숨을 멈추었다.

단전에 닿았다.

그 순간, 반발이 왔다.

몸이 리셋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내공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경맥 자체가 아직 넓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억지로 밀어 넣은 흐름이 단전 앞에서 되튀어 나왔다. 가슴 안쪽이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진소운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입 안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손바닥을 입에 댔다. 붉었다.

손가락 끝에 피가 한 줄 묻어났다. 많지 않았다. 토혈이라고 부르기도 과한 양이었다. 그러나 냄새는 분명했다. 쇠 냄새와 뭔가 더 깊은 것이 섞인, 몸속에서 나온 것의 냄새. 진소운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도복 자락으로 닦았다.

경맥이 좁은 것이다.

이 몸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되풀이하듯 그 생각을 단정 짓고 다시 자세를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눈이 감겼다.

감긴 눈 안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억누르려 했지만 피보다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가슴을 꿰뚫는 감각. 손가락 다섯 마디를 모두 합친 것 같은 차가움이 갈비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소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또렷했다. 검이 폐를 지나던 순간, 진소운이 마지막으로 느꼈던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진기가 빠져나가는 감각이었다. 이십육 년 동안 쌓아온 내공이 한꺼번에 뽑혀 나가던, 그 공허함.

단전이 텅 비는 것은 그때도 느꼈다.

지금도 느끼고 있다.

진소운은 눈을 떴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봄 저녁의 바람이었다. 찬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기분 좋은 온도. 그 바람이 이마를 지나갈 때 진소운은 자신이 지금 열세 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열세 살. 단전은 비어 있다. 경맥은 좁다.

머릿속에는 삼십 년치의 운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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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 뒤뜰로 나갔다.

뒤뜰 수련장은 작았다. 사형들이 쓰는 넓은 훈련장과는 달리, 이쪽은 백호문 제자들이 홀로 기초를 다질 때 쓰는 공간이었다. 모래가 깔려 있고, 나무 기둥 하나가 박혀 있고, 그게 전부였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의 하늘이 나무 기둥 뒤로 펼쳐져 있었다. 주황빛이 짧게 남아 있었다.

진소운은 나무 기둥 앞에 섰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지금 이 몸에 맞는 것이었다. 검은 아직 이른 물건이다. 내공이 없는 몸으로 검을 잡으면 형(形)만 남는다. 형만 남은 검법은 사부에게 속이기 쉬운 대신,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이 아니었다.

오른손 검지를 세웠다. 손가락으로 허공에 선을 그었다.

백호검법 일 초식, 도호(跳虎). 호랑이가 앞발을 내딛는 자세에서 시작해 상대의 어깨를 향해 비스듬히 내려치는 동작이다. 기울기는 삼십오 도. 오른발이 반 보 앞으로 나가는 것과 검이 움직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깨의 힘을 쓰면 안 된다. 손목과 허리가 연동되어야 한다.

손가락이 허공을 갈랐다.

소리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 손가락 끝에서 뭔가 특별한 것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소운의 눈은 그 선을 쫓고 있었다. 삼십오 도의 각도. 허리가 얼마만큼 틀어져야 하는지. 발이 모래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 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머리가 하나씩 복기했다.

두 번째 초식, 복호(伏虎). 세 번째, 분호(奔虎).

열두 번째 초식까지 손가락으로 그렸다.

그쯤에서 손을 내렸다.

숨이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내공을 쓴 것도 아니고 검을 든 것도 아닌데, 그 반복이 몸에 어느 정도 부하를 주었다. 열세 살짜리 몸은 정직했다. 진소운은 그 정직함을 탓하지 않았다. 다만 확인한 것이다.

지금 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래 위에 쭈그려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손바닥을 땅에 짚었다. 모래가 손금 사이로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손톱 자국이 있던 쪽 손이었다. 자국은 아직 남아 있었다. 붉은빛이 옅어지고 있었다.

경맥이 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소운은 그 사실을 서른 번쯤 되새겼다. 처음 이 몸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당황하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피를 보니 손이 한 번 떨렸다. 그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손을 땅에 더 깊이 짚었다. 모래가 더 들어왔다.

피가 나왔다는 것은 경로가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좁은 것은 좁은 대로 써야 한다.

억지로 열려고 하면 몸이 먼저 망가진다. 사흘 만에 단전을 억지로 틔우다가 쓰러진 사람은 강호에 이야기로 전해질 뿐이다. 진소운이 원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살아서, 사부보다 오래, 그리고 그보다 높이 서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모래를 손에서 털었다. 일어섰다. 뒤뜰 나무 기둥의 껍질이 석양빛 마지막 조각을 받아 잠깐 붉게 빛났다가 어두워졌다. 하늘이 빠르게 짙어지고 있었다. 별이 하나씩 나왔다.

진소운은 다시 손가락을 세웠다.

이번에는 검결이 아니었다. 풍운심법 구결의 열아홉 번째 줄. 손가락 끝으로 그 흐름을 허공에 천천히 그렸다. 경맥의 경로가 아니라,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틀어져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부가 설계한 방향과 자신이 접합해 낸 경로 사이의 갈림목. 그 갈림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손끝으로 한 번 더 더듬었다.

거기 있었다.

스물두 번째 줄 끝, 단전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경로가 하나 더 있었다. 사부의 구결은 그것을 막아 두었다. 가는 길이 아니라 진기가 돌아야 할 큰길 쪽으로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모르면 넘어가는 갈림목이었다.

진소운은 알고 있었다.

그 갈림목에서 틀어야 한다.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그것이 사부의 설계를 벗어나 백호심법(白虎心法)의 결과 접합되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이다.

경맥이 그 갈림목까지 닿으려면 단전부터 채워야 한다. 단전이 채워지려면 매일, 조금씩, 끊어지지 않고 운기조식을 쌓아야 한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토혈은 오늘 딱 한 번이었으면 족하다.

손가락을 내렸다.

별이 세 개가 됐다. 그 다음에 다섯 개가 됐다.

진소운은 뒤뜰을 한 번 둘러봤다. 조용했다. 모래 위에 자신이 걸어 온 발자국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방 쪽으로 물러서면서 그 발자국 옆에 하나를 더 남겼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창문으로 별 몇 개가 보였다. 이부자리를 펴지 않은 채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했다. 손톱 자국이 남아 있는 손과, 방금 모래가 들어갔다 나온 손.

단전을 채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했다.

절제하면 두 달. 무리하지 않으면 석 달. 그 안에 경맥을 넓히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속도를 내려다가 다시 토혈하면 하루를 버리는 것이다.

두 달이면 충분하다.

진소운은 그렇게 정리하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빈 단전은 내일도 빌 것이다. 그래도 오늘보다는 조금 덜 빌 것이다. 그 조금이 쌓이는 것이다. 삼십 년치 운용법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릇부터 만들어야 했다.

별이 창문을 채워 가는 동안 진소운은 고요히 앉아 있었다. 분노도 없었고 서두름도 없었다. 오늘 흘린 피 한 줄기가 제 몫을 했다. 얼마나 빨리 서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서야 하는지를 몸이 먼저 가르쳐 준 셈이었다.

눈을 감은 채로 숨을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억지로 경맥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고. 단전이 아직 비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오늘 밤 할 수 있는 운기조식의 전부였고, 지금 이 몸에 맞는 것이었다.

자정이 지나도록 그렇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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